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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씨노트😎

읽을 수 있는 자가 세상을 지배했다📝

AI 리터러시라는 단어를 많이 접한다.
과거에는 data 리터러시가, media 리터러시가 있었다.

문득, 읽을 수 있는 자가 세상을 지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가 생긴 이후 인류 역사에는 반복되는 패턴이다.
새로운 리터러시를 가진 자가 권력을 가졌다.
그리고 그 권력은, 언제나 중개자의 형태로 작동했다.

■ 역사가 보여주는 패턴
메소포타미아 시절, 쐐기문자를 아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 미만이었다.
서기관 계급만이 세금을 징수하고, 법률을 기록하고, 무역 계약을 작성했다. 문자를 안다는 것 자체가 국가 권력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라틴어였다. 성직자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고, 평신도는 신의 말씀을 직접 접근할 수 없었다. 교회는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서 권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1450년, 구텐베르크 인쇄기가 등장했다. 책 생산 비용이 300분의 1로 떨어졌다. 자국어 성경이 보급됐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2주 만에 유럽 전역에 퍼졌다. 교회의 해석 독점이 무너졌다. 종교개혁이 시작됐다.

18세기 계몽주의는 귀족 권력을 흔들었고, 19세기 미국 남부에서는 흑인 노예에게 글 읽기를 법으로 금지했다.
프레더릭 더글라스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글을 읽는 순간, 노예 상태를 거부하게 된다.” 지배계급은 리터러시 차단을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20세기가 되어서야 공교육 의무화로 리터러시가 처음으로 보편화됐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확산됐다.

■ 패턴의 핵심
정리하면 이렇다.
새로운 리터러시 = 기존 중개자의 해체 + 새로운 중개자의 등장
메소포타미아 서기관, 중세 성직자, 인쇄기 이후의 출판사·언론사, 20세기의 전문가 집단. 중개자는 항상 존재했다. 다만 그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 AI Literacy는 지금 어디쯤인가
인쇄기 직후와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도구는 이미 보급됐다. 누구나 클로드나 챗GPT를 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비판적으로 읽고 활용하는 능력의 분포는 극히 불균등하다.

한편에선 “AI가 중개자를 해체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률 자문, 의료 정보, 재무 설계 등 기존에는 전문가에게 속한 지식들이 이제 누구에게나 열린다.  코딩, 디자인, 영상 편집도 전문가 집단이 독점했던 것을 AI를 통해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됐다. 전문가 독점을 무너뜨린다는 논리다.

반대편에선 “AI가 새로운 중개자를 만든다”는 경고가 나온다. AI를 만드는 주체는 OpenAI, Google, Anthropic, Meta와 같은 소수의 빅테크다.
인쇄기는 누구나 살 수 있었지만, AI 인프라는 수천억 달러가 필요하다. 중개자가 사람에서 플랫폼으로 바뀐 것뿐이다.
알고리즘이 무엇을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는가를 결정하는 새로운 게이트키퍼가 됐다.
AI Literacy 격차가 새로운 계급을 만들고 있다.🫨

💡주씨생각
“중개자의 종류가 바뀌는 것이지, 중개자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리고 바뀐 중개자가 이전보다 더 민주적인가 아닌가는 AI Literacy의 분포에 달려 있다.

역사를 보면 리터러시가 보편화될 때마다 권력 구조가 흔들렸다.
공교육이 퍼지면서 민주주의가 가능해진 것처럼. AI Literacy가 얼마나 넓게, 얼마나 깊게 퍼지는가에 따라 이 기술이 해방 도구가 될지, 새로운 장벽이 될지가 결정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인쇄기가 막 보급된 그 시점에 서 있다.
어느 쪽이 될지는 아직 열려 있다👀